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의령남씨가전화접(宜寧南氏家傳畵帖)⟫
작가 미상, ⟪의령남씨가전화접(宜寧南氏家傳畵帖)⟫, 조선 18세기 추정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의령남씨가전화첩⟫은 의령남씨 집안에서 전승되었던 화첩이다. 가전화첩이란 후손들에 의해 계획되어 선조의 행적과 관련한 행사도들을 모아 꾸며진 화첩을 일컫는다. 현재 ⟪의령남씨가전화첩⟫은 분첩되어 이전의 그림과 글씨의 순서를 잃어버린 상태지만, 본래 한 화첩으로 의령남씨 집안에 전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의령남씨가전화첩⟫은 의령남씨 출신 인물과 관련된 특정 사건이나 행사를 기념하여 그린 그림과 관련 기록이나 참석자 명단 등으로 꾸며진 5개의 화첩이다. <태조망우령가행도(太祖忘憂嶺駕幸圖)>, <중묘조서연관사연도(中廟朝書筵官賜宴圖)>, <명묘조서총대시예도(明廟朝瑞葱臺試藝圖)>, <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 <영묘조구궐진작도(英廟朝舊闕進爵圖)>의 순이지만 각각 행사 시기와 제작 시기는 일치하지 않는다. 다섯 점의 그림은 함께 적혀있는 좌목(座目)이나 제문(製文)들을 통해 의령남씨가 참가하였던 행사를 도회(圖繪)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먼저 14세기 말엽 태조가 수릉지(壽陵地)를 물색하던 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태조망우령가행도>는 의령남씨 출신 남재(南在, 1351-1419)가 자신의 장지(葬地)로 준비해두었던 곳을 태조와 함께 둘러보는 장면이 그려졌다. 이어서 <중묘조서연관사연도>는 1535년 중종이 왕세자[훗날 인종]를 가르치던 남세건(南世健, 1484-1552)을 포함한 서연관들에게 베푼 사연(賜宴)의 장면이 묘사되었으며, <명묘조서총대시예도>는 명종이 서총대(瑞葱臺)에서 거행한 문무시예(文武試藝)에서 남응운(南應雲, 1509-1587)이 문장과 활쏘기 두 부분에서 1등을 하여 말 두 필을 하사받은 일이 그려져 있다.
<선묘조제재경수연도>는 선조 연간 여러 재신(宰臣)이 부모에게 올린 수연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한 집안이 아니라 열 개 집안이 연합해 한날 치른 합동 경수연을 기념한 것이다.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본에는 다섯 폭의 그림 외에도 「경수연절목」, 「좌차(座次)」와 참석자 명단, 「예조계사(禮曹啟辭)」, 이경석의 「백세채대부인경수연도서(百歲蔡大夫人慶壽宴圖序)」와 허목이 1655년에 지은 「경수연도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1605년 4월 삼청동 공해(公廨)에서 남이신(南以信, 1562-1608)을 비롯한 재신들이 노모를 위해 베푼 경수연을 기념하기 위해 다섯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것이다. 제1폭은 연회가 열리는 청사의 입구 장면으로 친지와 하객들이 붐비는 행사장 주변 정경을 보여준다. 제2폭은 음식을 준비하는 조찬소(造饌所) 주변, 제3폭은 수친계원들이 입시자제를 동반하여 계회를 갖는 장면이다. 제4폭은 집사자제의 모임을 그린 것이며, 제5폭은 경수연의 가장 중요한 순서로 내당에 대부인과 차부인 가장 상석에 윤대부인과 체대부인이 앉아있는 모습이다.
임진왜란 이후 가족 제도의 재정립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경수연은 효행의 실천을 강조하는 모범적인 사례였고, 선조는 경비의 일부를 하사하기도 하였다. 이경석의 서문에 의하면 이 그림은 원화(原畫)가 아니라 경수연에 참석했던 이문훤(李文萱, 1634-?)이 82세가 되었을 때 아들 이관(李灌)에게 다시 그리도록 하면서, 이경석과 허목(許穆, 1595-1682)의 서문을 받아 1655년 경에 화첩으로 꾸민 것이라고 한다. 이 화첩은 대각선 구도로 경수연의 장면을 다양하게 표현하여 현장감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 주목된다.
* 작품 이미지는 <태조망우령가행도(太祖忘憂嶺駕幸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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