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물성》 전시 리뷰 I
2023년 홍익대학교박물관 특별기획전 《또 다른 물성》 전시 리뷰
정지혜(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
미술 작품에서 ‘물성’은 ‘표면의 마티에르’나 ‘재료 고유의 특성’ 등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사전적 의미에서 ‘물성’은 ‘물질의 성질’이라는 다소 추상적이고 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즉, 물질을 다루며 창작 행위를 하는 미술가에게 ‘물성’은 그 자체로 이미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홍익대학교 박물관에서 선보인 2023년 특별기획전시 《또 다른 물성》은 이러한 관점에서 물성을 보다 다층적으로 해석한 전시라 할 수 있다. 덧붙여 “또 다른”, “물성”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또 다른 물성》 전시는 한국현대미술사의 맥락에서 물성의 의미와 물성에 대한 동시대 작가들의 새로운 해석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본 기획전은 홍익대학교 문헌관 3층에 위치한 박물관과 홍익대학교 홍문관 2층에 위치한 현대미술관, 두 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홍익대학교 문헌관 3층 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첫 번째 전시는 전후(戰後) 한국현대미술사의 맥락에서 ‘물성’의 의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시로, 홍익대학교 박물관의 소장품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박물관 전시는 1960년대 작품을 시작으로 시대 순으로 이어지며, 한국미술사에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진 작품부터 대중에게 공개된 바 없는 작품까지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먼저 전시장 입구 정면에 설치된 박종배의 앵포르멜 조각과 서승원, 최명영의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만나볼 수 있다. 거칠고 투박한 금속 조각과 얇은 레이어를 쌓아 올린 회화가 대조를 이루는 전시 도입부의 구성은 1960년대 국내 화단의 경향성을 간결하게 제시하면서도 상이한 물성과 장르의 대비를 보여준다. 이후 이어지는 공간은 1970-80년대 작품으로 구성되었으며,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박석원의 알루미늄 조각과 한국 고유의 미감을 드러내는 다양한 단색화를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박서보, 하종현과 같은 대표적인 단색화 작가 외에도 이정지, 윤미란 등 여성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뒤이은 공간에는 송수남, 윤형근의 동양화와 한영섭, 최대섭의 서양화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전시에 선보여진 동양화는 화면에 스며든 수묵을 통해 물성 간의 합일을 보여주는 반면 서양화는 화면으로부터 유화 물감을 덜어내는 방식을 통해 합치 될 수 없는 물성의 대비를 보여준다. 이는 동양과 서양에서 물질을 다루는 대조적인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이다. 또한 화면에 층위를 더해 물성을 드러내는 작품들과 달리 연필 선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나타낸 이건용의 작품이 물성을 주제로 한 본 전시에 포함되었다는 점 또한 물성에 대한 시야를 확장하여 살펴볼 수 있는 지점 중 하나이다. 이밖에 곳곳에 배치된 노재승과 전국광의 조각은 단단한 재료 본래의 특성과 대조 되는 물성의 표현을 통해 전시를 보는 이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홍익대학교 홍문관 2층 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두 번째 전시는 본교의 소장품이 일부 포함되었으나 32명의 동시대 작가가 제시한 ‘물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살펴보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현대미술관 전시는 크게 ‘감각’, ‘레이어’, ‘디지털’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미술관 입구를 들어서면 다채로운 매체와 장르가 혼합된 작업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역사적 맥락에서 ‘물성’이라는 키워드가 주는 이미지를 벗어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시장 입구 오른 편에 ‘디지털’이라는 키워드를 따라 배치된 다양한 미디어 작품들은 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물질의 특성을 넘어서 모니터 스크린이나 동력 장치 등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보여준다. 또한 ‘디지털’ 키워드에 따라 구성된 작품 중 전통적인 영역에서 회화와 조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들은 픽셀의 형태에서 출발하거나 3D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제작되어 디지털 시대에서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디지털’을 키워드로 구성된 공간의 왼 편에는 ‘레이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레이어’는 화면에 물질을 반복적으로 쌓아 올려 만들어 낸 층위를 의미한다. 회화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레이어는 그림에 물성과 시간성을 담는다. 이번 전시에서 레이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모인 작품들은 물감 외에도 미디엄, 에어브러시, 건축용 자재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동시대 작가들이 실험하고 있는 다양한 물질과 화면의 깊이, 물성에 대한 심화된 해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전시장 오른 편의 앞쪽을 향해 걸어가면 작은 통로가 나오는데, 이 통로를 지나면 ‘감각’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모인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감각이라는 키워드는 시각 외에도 미각, 촉각 등의 다양한 감각이 전시에 포함되었음을 내포한다. 이에 부합하듯 ‘감각’을 키워드로 한 전시 공간에서는 서사, 언어, 빛의 파장 등 비가시적인 대상을 가시화 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작품은 참여 작가들의 물질을 다루는 섬세한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물성》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박물관에 전시된 박현기의 <무제>라는 작품이었다. 박현기는 ‘비디오 돌탑’ 또는 <만다라 시리즈> 등 디지털 작업으로 친숙한 작가이기에 본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무제>는 다소 생소하게 다가왔다. 실제로 대중에게 공개된 바가 드문 이 작품은 두 개의 크고 작은 돌이 금속판 위에 무심하게 놓인 모습을 하고 있다. 두 개의 돌은 크기와 표면이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녹슨 금속판은 부분적으로 연마 되어 있어 광택이 있었던 금속판의 본질을 보여주는 듯했다. 자연물인 돌과 인공물인 금속의 결합, 거친 표면과 매끈한 표면의 대조, 사물이 드러내는 시간성 등은 물질 간의 관계성과 물성에 대한 당대 작가들의 관심이 고조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끝으로 《또 다른 물성》 전시는 한국현대미술사에서 하나의 경향성으로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었던 물성 표현을 아카이빙하는 것에서 나아가 현시점에서 ‘물성’을 어떻게 해석해 나갈 것 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전시였다. 물성을 주제로 한 본 전시가 포함하고 있는 일부 작품은 혹자에게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시는 물성이 어떠한 매체, 표현, 감각까지 그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지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이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박물관과 미술관, 두 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진 구성은 역사적 맥락의 물성과 새로운 관점의 물성을 구분함으로써 물성에 관한 다층적인 해석이 관람객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도록 배려한 구성으로 보였다. 전시의 구성을 따라 시대와 키워드 별로 묶여 있는 작품의 차이를 비교해 보고 공개된 적 없는 본교 박물관의 소장품을 찾아보는 것은 이번 전시를 더욱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