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물성》 전시 리뷰 II : Part 2
새로운 물성의 출현
홍문관 2층 현대미술관 2관 <또 다른 물성>展
민정범(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재학)
작품의 물성은 때로는 재료 특유의 특성을 보여주기도, 때로는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보여주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동시대 미술계에서 물성에 대해 어떻다 단언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홍익대학교 박물관의 2023년 기획전시 <또 다른 물성>展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전시의 주제인 ‘물성’은 단순히 작품에 사용되는 재료의 특징을 넘어 작가들의 작품을 잇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수행한다. 홍문관 2층에서 열린 전시에서는 박물관의 소장품 7점과 동시대 작가의 작품 32점을 함께 전시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물성에 대한 작가들의 모색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게 했다. 특히 한국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에 주목하며 개인의 예술관이 그들이 선택한 재료에 의해 어떤 물성으로 표현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규칙성이 없거나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된 작품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은 작가 고유의 내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되어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성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핵심이다. 왜냐하면 물성은 쉽사리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작품의 내용을 공감각적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평면 작업과 조각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설치의 영역에서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이 다수 등장했는데 설치 작품에서는 다양한 재료가 혼합됨으로써 특수한 물성이 형성된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재료들은 단순히 시각적인 감상의 대상을 넘어 공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변모했고, 이로 인해 재료의 물성은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한지현의 는 나무로 제작한 구조물 위에 석고 등으로 제작한 파편을 올려둔 작품으로, 파편들이 형성하는 그림자는 x-ray 화면을 연상시킨다. 김명찬의 <360kg>은 벽돌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작품으로, 작가는 픽셀화 시킨 사진을 토대로 비물질과 물질의 경계를 어떻게 해체할 수 있을까에 대해 모색했다.
작가가 작품의 물성을 드러내는 방식이 현대의 디지털 미디어와 닮아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홍익대학교 박물관의 소장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한국의 근현대 작가들은 비교적 자연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창조해냈다. 이들이 작업을 하는 방식 또한 캔버스 위에 한 땀 한 땀 획을 그어가는, 수련의 자세에 가까웠다. 하지만 동시대의 작가들이 작업을 하는 방식은 훨씬 자유로우며 다분히 경계가 허물어진 인터넷 생태와 닮아있다. 마치 인터넷 스크린에 이미지를 자유롭게 배치하거나, 편집을 통해 변주를 주는 것처럼 캔버스 위의 세계를 창조한다. 여러 장의 레이어를 겹치거나, 이질적인 것들을 자유롭게 배치하거나, 조화보다는 충격적이고 이전에 본 적 없는 풍경을 제작하는 작가들이 많아졌다. 한지훈의 는 캔버스에 인쇄된 테이프를 빽빽하게 겹쳐 휘감은 작품으로, 마치 픽셀 화면을 실제 세상으로 옮겨 온 듯한 느낌을 준다. 한편 이희준의 는 이질적인 물성을 보여주는 대상들을 콜라주 하듯 배치해 독특한 미감을 보여준다.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에서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으로 이어져 오는 계보에서 작가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은 변화했고, 재료의 다양화와 매체의 발달로 인해 보다 다양한 물질적 특성이 작품에 출현하게 되었다. 개성이 강한 다수의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뜻깊은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국 작가들이 물성에 대한 어떤 모색을 이어오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전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